이황의 월란대 원문판독 및 현판 번역
월란대(月瀾臺) 이황(李滉, 1501~1570)
高山有紀堂 높은 산에는 모서리도 있고 펀펀한 곳도 있는데
勝處皆臨水 경치도 좋은 곳은 모두 강가에 있네
古庵自寂寞 오래된 암자 저절로 적막하니
可矣幽棲子 그윽하게 사는 이에게 있을 수 있네
長空雲乍捲 넓은 하늘에 구름이 문득 걷히니
碧潭風欲起 짙푸른 소(沼)에 바람일 것 같네
願從弄月人 바라노니 달을 즐기는 사람을 쫓아서
契此觀瀾旨 이 물결 관찰하는 뜻을 깨닫고자 하네
이황(李滉, 1501~1570), 退溪先生文集 卷1, 戲作七臺三曲詩. 月瀾庵近山臨水, 而斷如臺形者凡七,水繞山成曲者凡三。
月瀾臺
高山有紀堂, 勝處皆臨水. 古庵自寂寞, 可矣幽棲子. 長空雲乍捲, 碧潭風欲起. 願從弄月人, 契此觀瀾旨.
이황(李滉, 1501~1570), 退溪先生文集 卷4, 詩, 遊月瀾菴 七絶.
서림(西林)의 감개 : 서림은 송나라 때의 학자 주희(朱熹)가 이동(李侗)을 배알하고 수학할 적에 머물던 절 이름이다. 이때 〈제서림가사달관헌(題西林可師逹觀軒)〉이라는 시를 지었는데, “옛 절에 다시 오니 감개가 깊은데, 작은 집은 옛날에 지내던 그대로이네. 지난날 묘처라고 여겼던 것이 지금은 한으로 남나니, 만고의 하늘에 한 조각 마음이로다.〔古寺重來感慨深 小軒仍是舊窺臨 向來妙處今遺恨 萬古長空一片心〕”라고 한 내용이 있다. 그 후 퇴계 이황이 도산 근처의 월란사(月瀾寺)에서 노닐면서 지은 〈유월란암(遊月瀾菴)〉이라는 시에 “금란대에 안 와본 지 어언 몇 해이던가, 밝은 창 한 방에 선승처럼 앉았네. 옛날 서림에서 감개하던 뜻을 떠올리니, 추월빙호의 소식은 아직도 묘연하구나.〔不到瀾臺今幾年 明窓一室坐如禪 憶曾感慨西林意 秋月氷壺尙杳然〕”라고 하였는데, 대산의 시구는 이 두 가지 의사를 차용한 것이다.